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는가? 8 - 떼법의 역사(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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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는가? 8 - 떼법의 역사(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

by 개인주의자 2024. 9. 14.

우리는 언젠가부터 '떼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구체적으로 언제쯤이었을까요? 제 기억으로는 세월호때부터가 아닌가 합니다. 이 떼법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때도 유감없이 작용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떼법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부분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는가? 시리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는가? 1 - 시리즈를 시작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는가? 2 - 박근혜 탄핵 사건의 개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는가? 3 - 세월호 7시간 동안 청와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는가? 4 - 최태민의 정체는 무엇인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는가? 5 - 최서원(최순실)은 어떤 사람일까?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는가? 6-1 - 최서원(최순실)이 썼다는 태블릿 PC의 정체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는가? 6-2 - 최서원(최순실)이 썼다는 태블릿 PC의 정체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는가? 7 - 국회의 탄핵 소추 통과 과정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는가? 9 - 미르 재단, K-스포츠 재단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는가? 10-1 - 최서원(최순실)과 고영태와 박근혜 탄핵의 기획자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는가? 10-2 - 박근혜 탄핵 공작이 시작되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정당했는가? 11 - 시리즈를 마치며

 

빨간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이동합니다.

 

떼법은 무엇인가?

떼법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나무위키에 나온 정의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떼를 써서 만들고 적용한 법", 또는 "떼거리의 힘으로 만들고 적용한 법" 등으로 떼법이라고도 한다.

나무위키, 국민정서법

 

나무위키에서는 떼법을 또 다른 유식한 말로 국민정서법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 말에 동의합니다.

 

떼법은 우리가 아는 것 보다 오래됐다

떼법 혹은 국민정서법이라는 것이 떼를 써서 그것이 합법이든 불법이든 만들고 적용한 것이라면 그 역사는 상당히 오래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것만 해도 1960년 4.19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김용삼 기자에 의하면 4.19당시 1957년 치안국 경무관이 된 곽영주는 4.19당시 발포명령을 했다는 이유로 장면정부에서는 단기형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어진 박정희 정부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사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형이 단기형에서 사형으로 바뀐 것은 사람이 죽었는데 단기형이 말이되냐는 여론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시위대가 경무대를 위협하자 발포한 것을 여론에 떠밀려 책임자가 사형을 당하자 경찰은 두번다시 과격한 시위를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 예가 바로 5.18이었습니다.

 

곽영주의 실제사진

 

떼법(국민정서법)의 문제가 무엇인가

우리가 헌법을 비롯한 실정법들을 보면 어떤 것을 적용하기 위한 기준, 절차, 양형의 범위가 정해져 있습니다. 왜 정해져 있을까요? 그것은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함이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즉 공정함을 꾀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단지 기분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절차를 어기거나 없애버리면 사회에 엄청난 부작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이었습니다. 단지 군중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또 중립적이어야 할 국회의원이 군중의 외침을 떠들면서 탄핵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떠들고 결국 졸속으로 통과되어 버렸습니다.

 

당시 떼법(국민정서법)은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광화문광장에서 벌어진 촛불집회에 대한 언론보도를 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서울역이나 강남쪽에서 벌어진 태극기 집회는 아셨는지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는 JTBC가 태블릿PC를 처음 보도한 2016년 10월 24~26일의 마지막 날인 26일 부터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태극기 집회는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표결되어 통과된 날인 2016년 12월 9일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두 집회의 시작날짜가 매우 다릅니다만 단순히 인원수로 봤을 때는 태극기 집회가 촛불집회를 압도했었습니다. 그 기사를 찾아보자면

 

2017년 1월 7일 박근혜 하야 및 탄핵 반대집회 당시에 경찰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의 촛불집회 참가자 숫자를 24000명을 집계했다. 경찰은 서울 강남 일대 등의 태극기집회 참가자 숫자는 37000명으로 집계했다.

타라 오, 미국인 박사가 파헤친 박근혜 탄핵의 진실, 21page

 

떼법(국민정서법)은 분명 문제가 있고 우리가 지양해야할 것이지만 순수한 떼법(국민정서법)이었다면 당연히 더 많이 모인 태극기 집회쪽의 말을 들어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합니다.

 

광화문 촛불집회

 

당시 태극기 집회(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저도 수많은 주류언론들이 태극기 집회는 일절 보여주지 않고 또 보도조차 하지 않고 촛불집회만 보도해서 당시에 태극기 집회가 있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 사건을 조사하며 공부하다보니 태극기 집회가 철저히 외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2017년 1월 7일 박근혜 하야 및 탄핵 반대집회는 경찰추산으로 태극기 집회 참가자가 촛불집회 참가자 숫자를 처음으로 눌렀지만 주류언론은 이 사실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 타라 오, 미국인 박사가 파헤친 박근혜 탄핵의 진실, 21page

 

태극기 집회에 대한 외면은 주류언론들 뿐 아니라 경찰들마저 외면했었습니다.

 

경찰은 태극기집회 참가자 숫자가 촛불집회 참가자 숫자를 넘어서자 곧바로 집회 참석 인원 숫자를 추산하는 일을 중단했다. - 타라 오, 미국인 박사가 파헤친 박근혜 탄핵의 진실, 21page

 

이렇게 언론들과 경찰이 중립적으로 나오지 않고 편파적으로 나오니 외국에서는 한국국민들이 대통령의 하야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태극기 집회

 

헌법재판소, 떼법(국민정서법)에 굴복하다

얼마전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청문회에서 야당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을 들고와 질문하는 과정에서 김문수 장관 후보자가 탄핵에는 문제가 있다고 발언하자 야당의원들은 헌법재판소가 인정한 것인데도 그렇다고 생각하느냐? 라고 질문했습니다. 여기에 김문수 장관 후보자는 그렇다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아무나 하는게 아닙니다. 법조계 안에서도 상당한 실력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탄핵과정에서의 문제점을 모른다는게 말이 됩니까? 이것은 명백히 떼법(국민정서법)에 굴복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헌법재판소는 문제를 정확히 알고 국회에 탄핵소추안을 수정하라고 여러번 지시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꼭 탄핵을 인용하겠다는 자세로 국회에 수정을 요구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탄핵소추안은 2016년 12월 9일 헌법재판소에 제출되었다. 2016년 12월 22일 헌법재판관 강일원은 청구인 자격을 가진 국회 소추위원단에게 탄핵소추안에 명시된 9건의 혐의를 5건으로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중략

2017년 1월 25일 헌법재판관 강일원은 또 다시 청구인에게 재정리를 요구했는데, 다섯 번째 항목 "형법 위배, 뇌물 등"의 삭제를 요구했다.

타라 오, 미국인 박사가 파헤친 박근혜 탄핵의 진실, 36~37page

 

탄핵소추안을 고친다는 것의 문제는 국회는 탄핵소추안 A를 가결시켰는데 헌법재판소는 A가 아닌 B를 가지고 인용 또는 각하를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고쳐놓고 다시 국회표결을 붙여 가부여부를 판단했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