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일본군 위안부 진실은 무엇인가? 10 - 일본군 위안부는 정말 성노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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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진실은 무엇인가? 10 - 일본군 위안부는 정말 성노예였을까?

by 개인주의자 2024. 7. 6.

위안부 문제만 나오면 우리를 열받게 만드는 마지막 화두는 바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예였다'라는 명제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도 성노예설의 기원과 반론을 말씀드릴테니 생각은 독자여러분께서 하시기 바랍니다.

 

 

 

일본군 위안부 진실은 무엇인가? 시리즈

일본군 위안부 진실은 무엇인가? 1 - 시리즈를 시작하며

일본군 위안부 진실은 무엇인가? 2 -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설의 시작(요시다 세이지)

일본군 위안부 진실은 무엇인가? 3 - 일제 강점기 시대의 여성인권

일본군 위안부 진실은 무엇인가? 4 - 일본군 위안소의 창설과 일본 정부의 관여

일본군 위안부 진실은 무엇인가? 5 - 위안부 할머니 증언의 개요

일본군 위안부 진실은 무엇인가? 6 - 할머니들은 어떻게 위안부가 되었을까? 1

일본군 위안부 진실은 무엇인가? 7 - 할머니들은 어떻게 위안부가 되었을까? 2

일본군 위안부 진실은 무엇인가? 8 - 할머니들이 증언한 강제연행은 과연 사실일까?

일본군 위안부 진실은 무엇인가? 9 - 소녀상처럼 위안부 할머니들은 진짜 소녀 때 위안부로 갔을까?

 

일본군 위안부 진실은 무엇인가? 11 - 시리즈를 마치며(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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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예란 무엇인가?

먼저 성노예의 정의와 대체 어떤 대우를 받아야 성노예라고 할 수 있는지부터 알아봅시다.

1. 비인간적 대우

먼저 노예라는 것은 그가 누구라도 절대로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여러 폭행과 폭언을 견뎌야 합니다. 그런 폭력에 못견뎌서 결국 죽더라도 소위말해 개죽음인 것입니다.

2. 노동

노예들은 노동을 하는데 어떤 인간적 권리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고대시대의 노예들을 떠올려보면 중노동을 하면서도 쉬지못하고 지쳐 쓰러지거나 하면 채찍으로 맞기도 합니다. 이건 노예를 인간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짐승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3. 노동에 대한 보상

우리는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월급이라는 것을 받습니다. 물론 여러 사내복지도 있지만 월급이 대표적입니다. 월급이라는 것을 경제학적으로 따져보자면 기업은 노동력을 구매하는 것이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것입니다. 그 댓가가 바로 월급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예는 인간이 아니기에 절대로 월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위의 세가지 대우를 받아야 그 사람으로 하여금 노예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성노예는 성(性)을 제공하는데 있어 노예처럼 한다는 의미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아는대로 위안부 할머니들이 당시 이런 대우를 받았을까요? 그것을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인 위안부 성노예설의 근거

그렇다면 조선인 위안부 성노예설이 어디에서 부터 나왔을까요? 그것은 바로 정대협(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에서 발간한 위안부 할머니 증언집인 강제로 끌려간 군위안부들을 비롯한 총 8권의 책에 있는 증언의 일부 였습니다. 그럼 그 근거가 되는 증언들을 보겠습니다.

 

- 3권, 김군자 할머니 증언

나이가 한 삼십 되나 봐. 일본사람이지. 일본말 하는데 알아들어? 모르지. 오십사 년 전인데 뭘. 거절해서 두드려 맞았지. 귀퉁백이를 얻어맞았어. 그래서 고막이 터졌어. 한 두어 번 때렸나봐. 이쪽 저쪽 양쪽으로 때렸는데 오른쪽 귀가 터졌어. 안들려. 지금도, 귀에서 피가나오는데 그냥 말았지 - 정대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3권 81page

 

증언에 따르면 접대거부로 일본 군인에게 양쪽 뺨을 서 너차례 맞은 것으로 보입니다.

 

- 3권, 김은례 할머니 증언

좋은 놈은 그렇지만, 성질이 괴팍한 놈들은 말도 마. 아래가 하도 아파서 제대로 상대를 못 해주면 짐승 때리듯 나를 패는거야. 그때 머리를 하도 맞아서 지금도 이렇게 머리가 자주 아픈가봐.
- 정대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3권 128page

 

증언에 의하면 아래가 아팠던 이유가 하루에 열명씩 받고 심지어 밤과 낮, 2교대로 번갈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 6권, 김봉이 할머니 증언

"억지로 집어 넣지. 옷을 벗겨? 그냥 찢어 버리제. 벗기도 안해".

중략

싫다고 한게 니 같은 것들이 뭣이냐고 우리 부수품(부속품)이라든가? 부수픔으로 온 것이제 뭣이냐고 일본말로 함시로 때려 - 정대협, 역사를 만드는 이야기 274~275page

 

일본군인들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위안소로 들어오면 짐승같이 시작하고 심지어 거부하면 부속품 따위가 무슨 거부냐며 때렸다는 이야기 입니다.

 

 

노동에 대한 보상문제

주익종 박사가 정대협에서 펴낸 증언집 8권을 분석한 결과 명백하게 돈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한 할머니들이 35명이고 돈에대해 전혀 언급이 없는 분들이 38명이었다고 합니다. 표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 분 돈 못받음 언급 없음 급여 수령 기 타
채무 상환만 거액 저축
103명 35명 38명 24명 5명 1명
34% 36.9% 23.3 4.9% 0.9%
  김학순, 김덕진,
하순녀, 황금주,
이용수, 이옥분,
이순옥, 이상옥,
이용녀, 김태선,
박순애, 윤두리,
진경팽, 박두리,
강무자, 여복실,
박순이, 김군자,
심달연, 조선덕,
김영자, 정윤홍,
김복동(4), 신경란,
이금순, 이양근,
김화자, 석순희,
장점돌, 김순악,
길원옥, 임금이,
박팔연, 박막달,
정학수
오오목, 문필기,
최명순, 강덕경,
손판임, 배족간,
전금화, 최정례,
김은진, 훈할머니,
김소란, 김은례,
최화선, 김유감,
김화선, 한옥선,
최갑순, 윤순만,
안법순, 석복순,
김정순, 정서운,
임정자, 노청자,
김봉이, 홍강림,
홍애진, 김순옥,
지돌이, 이광자,
이옥선, 하옥자,
강일출, 문명금,
박옥선, 박서운,
이귀녀, 박대임
이득남, 김복동,
김분선, 김춘자,
최일례, 황순이,
김끝순, 조남례,
신헌순, 윤애자,
이후남, 하복향,
양정순, 공점엽,
하군자, 이봉화,
장춘월, 역영란,
조윤옥, 이수단,
배삼엽, 현병숙,
박우득, 김의경

이영숙, 문옥주,
박연이, 김옥주,
하영이
감창연

※ 주익종, 일본군 위안부 인사이드 아웃, 340page 참조

 

할머니들의 증언상 이렇게 여러 비 인간적 대우와 가혹한 노동조건 그리고 노동에 대한 보상을 전혀 못받았거나 증언에서 보상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증언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서 성노예설이 나온 것입니다.

 

조선인 위안부 성노예설에 대한 반론

앞서 성노예설에 대한 근거에 대한 반론은 마찬가지로 할머니들의 증언에서도 나오기도 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

- 5권, 신경란 할머니 증언

질문 : 특별히 이렇게 뭐 칼로 술 취해 가지고 때리거나 그런거는 없었겠어요?

 

답변 : 아유 큰일나지. 현병들 있잖아. 그럼 일선이 가면 헌병들이라 하면 장교 아니라 별사람들이 쩔쩔매. 헌병이 항상 순찰돌지, 때리고 그러면 큰일 나지, 안 때려. 그래도 뭐 가다가 못된 놈 있지. 못된 놈 있으면 또 우리 친구들이 막 건드리지 말라고 하지. - 주익종, 일본군 위안부 인사이드 아웃, 395page -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5권

 

즉 헌병들이 순찰 돌면서 일선부대 장교나 사병들이 위안부에게 폭력을 쓰면 단속하고 큰일난다는 말입니다.

 

- 5권, 석복순 할머니 증언

군인들 중에 못되게 구는 사람은 있었나요? 라는 질문을 받은 석복순은 "군인들이 어디라고 (그런 짓을 해). 술 먹어도 잠잠하지. 행패 부리고 때리고 (이런 거는) 일절 없어. (계급) 높은 사람한테 맞아 죽어"라고 모순된 답을 하기도 했다.

 - 주익종, 일본군 위안부 인사이드 아웃, 395page -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5권

 

- 문옥주 할머니 증언

그 병장은 엄청난 기세로 칼을 휘둘렀고 나는 정신없이 몸으로 밀어붙였다. 그 기세에 놀란 남자는 칼을 마루에 떨어뜨렸다. 나는 그것을 주워 들고 남자를 향해서 똑바로 찔렀다. 칼은 정확하게 남자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 병장은 며칠 뒤에 병원에서 죽었다고 했다. 내가 사람을 죽인 것이다.

중략

나는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중략

놀랍게도 나는 무죄로 판결받았다. 나의 정당방위가 인정된 것이다.

모리카와 마치코,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 137~138page

 

노예가 주인을 죽였는데 정당방위 판결이 나온 것입니다. 과연 이게 가능할까요?

 

문옥주 할머니

 

일본군의 위안부에 대한 대우

일본군이 위안부들을 어떻게 대했을까요? 객관적인 사실을 살펴보겠습니다.

 

- 인질교환사건

중국의 한 지역에서 위안부 한명이 중국 공산당군에게 납치되자 협상을 벌여 데려온 일입니다.

 

한커우 인근 잉청에서 한 위안부가 신사군(중국 공산당 군대)에 납치되었다. 그런데 운이 좋아서, 일본 헌병대에 억류된 신사군 중대장의 여동생과 그 위안부를 교환하는 교섭이 이루어져 서로 교환되었다. 일본군은 위안부를 구하기 위하여 적군 간부의 가족을 내준 것이다. - 주익종, 일본군 위안부 인사이드 아웃, 396page

 

만약 소모품같이 위안부를 대했다면 이런 협상을 벌여 구해올까요?

 

- 죽은 위안부 유해 수습

일본군은 해외 전장에서 사고로 죽은 위안부의 유골도 수습 보관하였다. 버마 아캬브의 칸파치클럽 업주와 조수, 위안부 일행이 조난 사고로 4명이 사망해였는데, 살아남은 중상자 1명은 인근의 병원에서 우선 치료를 받았다. 이 중상자의 이동은 모두 일본군이 교통편을 마련해준 덕분이었다.

중략

일본군은 이 귀환하는 위안부들 편에 앞서 사망한 업주 등 4명의 유골을 보내서, 랑군 병참사령부 유골보관소에 안치시켰다. - 주익종, 일본군 위안부 인사이드 아웃, 397page

 

위안부의 여가와 삶

버마에서의 그녀들의 생활은 다른 곳과 비교하면 사치스러울 정도였다. 식료와 물자의 배급량은 많지 않았지만 원하는 물품을 구입할 충분한 돈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들의 살림살이는 좋았다. 그녀들은 고향에서 보내온 위문품을 받은 군인이 주는 각종 선물에 추가해서 그것을 보충할 의류, 신발, 권연, 화장품을 살 수 있었다. 그녀들은 버마 체류 중 장병과 같이 스포츠 행사에 참가하면서 즐겁게 지냈다. 또 피크닉, 연예회, 만찬회에 출석하였다. 그녀들은 축음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도시에서는 쇼핑하러 외출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 주익종, 일본군 위안부 인사이드 아웃, 399page

 

위의 내용은 버마 미치나의 위안부 포로들을 심문한 미군의 보고 내용입니다. 그 보고내용을 주익종박사가 인용한 것입니다.

 

위안부의 노동의 대가

노예의 또 다른 특징은 노동의 대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위의 표에서 돈을 받지 못했다는 답을 한 할머니들과 증언중에 돈에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는 할머니들의 비율이 전체에서 70%에 달합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먼저 위의 증언집에 나온 증언은 할머니들의 일방적인 증언이라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위안부의 모집구조에서 보면 '전차금'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 전차금이라는 것은 해당 여성을 판 부모나 아니면 친권자에게 주는 선금개념입니다.

 

즉 해당 여성이 위안부로서 일을하며 벌 돈을 미리 준다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이 전차금은 위안부 여성에게 붙는 채무가 됩니다. 이 채무를 다 갚을 때 까지는 돈을 거의 못벌다가 다 갚게되면 선택을 합니다.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계속남아 위안부 일을 할 것인지.

 

만약 계속 남아서 위안부 일을 하게 되면 업주와 매출에 대한 지분협상을 하게 되는데 대개 50;50이었습니다. 이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위안부의 예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2년이 지나자 그곳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환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2년이 지나고 며칠이 지나도 주인이 아무런 말도 안했다. 그래서 어느날 술한되를 사먹고 술주정을 했다. 주인이 이것을 보고 헌병대에 고발한다고 해서 "고발할테면 해라. 나도 고발할꺼다. 계약기간이 지난 것도 모두 안다. 그리고 너희들이 나에게 학대한 모든 것을 고발할테다". 하면서 엄포를 놓았다. 그 다음부터는 나에게 오는 군인을 한 사람도 받지 않았다.

- 정대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67page

 

위의 증언은 이영숙 할머니의 증언입니다. 자신이 전차금을 모두 갚았는데 주인이 아무말 없자 술주정을 한 것입니다.

 

- 군사우편저금

위안부들은 전차금을 전부 갚고나면 군사우편저금이라는 형태로 저금을 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문옥주 할머니입니다.

 

이분은 총 26342엔을 저금하였고 그 금액은 현재가치로 8억 3천만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해방직후 그것을 못받다가 한일청구권협정 당시까지 이자가 붙어 총 원금이 50108엔이 되었으나 청구권협정으로 최종 소멸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어쩌면 문옥주 할머니가 예외적인 경우였을 수도 있으나 이정도로 돈을 모을 수 있었다는 자체가 위안부가 성노예였다는 논리를 깨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문옥주의 군사우편저금 원부 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