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부가 중화학 공업을 시작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했다면 전두환 정부는 전자통신산업을 시작하고 집중적으로 육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7 - 산업정책 1에서 반도체 산업을 다뤘습니다. 사실 이 통신혁명도 반도체가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두 업적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시리즈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1 - 전두환은 5.18과 어떤 관계인가?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2 - 전두환은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을까?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3 - 경제분야 1 : 전두환 정부 초기 경제상황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4 - 경제분야 2 : 인플레이션을 잡아라!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5 - 경제분야 3 : 금융민영화와 수입자유화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6 - 경제분야 4 : 3저호황과 외채의 악순환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7 - 산업정책 1 : 한국 반도체 산업의 시작과 발전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9 - 국민 통제 해제 : 야간통행금지 해제, 두발 자유화, 교복 자율화 해외여행 · 해외 유학 자유화 등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10 - 88 서울 올림픽의 의미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11 - 시리즈를 마치며(왜 전두환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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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 초기의 통신
요즘 통신이라고 하면 기본적인 것이 바로 휴대폰과 인터넷일 것입니다. 그러나 1980년대에는 전화가 가장 기본적인 통신수단이었습니다. 문제는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우리 경제가 급성장하며 통신에 대한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있는데 반해서 그 공급이 매우 적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전화기 자체가 부족해서가 아니고 발신자와 수신자를 연결해주는 교환기의 부족때문이었습니다. 한 대의 교환기는 수용할 수 있는 회선의 양이 있습니다. 따라서 교환기의 대수가 늘어나거나 기술의 발전으로 한대의 교환기가 감당할 수 있는 회선의 수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전화의 수요에 비해 공급부족은 계속 될 것입니다.
전두환 정부 초기의 통신부족의 양상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청색전화와 백색전화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청색전화는 해당 회선을 소유하는 형태이고 백색전화는 회선을 대여하는 형태로서 이사가거나 할 때는 그 전화를 반납해야 했었습니다.
거기다가 청색전화는 고사하고 백색전화를 신청하여 회선을 받기까지 최소 수 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러다보니 백색전화 회선의 가격이 거의 당시 집 한채 값(약 200만원)에 해당됬었다고 합니다.
전화 교환기의 종류와 발전
이 포스팅에서는 전화 교환기의 중요성을 알기위해 최대한 간단하게 전화 교환기의 종류가 무엇이 있고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서술하고자 합니다. 저도 전자전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깊은 내용을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합니다.
1) 수동식 교환기
이 교환기는 아마 과거시대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한번쯤 보셨을 것입니다. 전화의 수화기를 들고 전화 옆에 있는 수동레버를 돌립니다. 그러면 교환수가 말을하고 교환수에게 어디어디 연결해주세요. 하면 교환수가 수동으로 교환기의 코드를 빼고 끼우면서 연결해주는 방식의 수동 교환기 입니다.
이 교환기의 경우 가장 큰 문제가 회선을 늘리고 싶다면 교환기 뿐만아니라 교환수까지 늘려야 하기때문에 비용이 많이들고 여러 제약이 발생했습니다.
2) 자동식 교환기
수동식 교환기의 한계로 인해 자동식 교환기가 발명되었습니다. 물론 방식에 따라 기계식 교환기, 크로스바 교환기,.전자식 교환기로 나눌 수 있으며 전자식 교환기는 반전자 교환기와 전전자 교환기로 나눠집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교환기는 전자식 교환기 두 종류이기 때문에 기계식과 크로스바 교환기는 간단히 언급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 기계식 교환기
최초로 발명된 자동식 교환기로서 단계적 방식으로 교환해주는 교환기 입니다. 즉 전화가입자가 다이얼로 번호를 누르면 그 번호에 따라 셀렉터와 커넥터가 순차적으로 작동하여 연결해주는 방식입니다. 단점은 순차적으로 연결하다보니 속도가 좀 느리다는 것입니다.
- 크로스바 교환기
크로스바 교환기는 기계식 교환기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교환기입니다. 전화 회로망과 공동제어장치를 분리시켰습니다.
- 전자식 교화기(반전자 교환기)
전자식 교환기가 발명될 무렵, 컴퓨터가 실용화 되었습니다. 따라서 기계요소로 되어있던 공동제어장치를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로 바꾼 것입니다. 따라서 속도면에서 크로스바 교환기에 비해 매우 빨라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통화로를 구성하는 스위치부에서 여전히 기계적 요소인 회선스위치 또는 크로스바 스위치 또는 릴레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회선을 늘리려면 스위치부에 들어가는 기계적 요소가 더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부피가 매우 커지게 됩니다. 또한 기계적 요소의 짧은수명도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를 이해하시려면 PLC프로그램에서 구현하는 릴레이의 무한대성과 기계적 릴레이을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 전자식 교환기(전전자 교환기)
전전자 교환기는 반전자 교환기에서 기계적인 요소가 들어갔던 스위치부를 반도체 스위치로 바꿨습니다. 따라서 모든 신호가 디지털화가 되었으며 반도체의 특성으로인해 회선을 늘리더라도 부피가 크게 커지지 않게 되었고 속도도 매우 빨라졌습니다.
전두환 정부 때만해도 이 전전자 교환기는 세계에서 내놓라하는 6개의 선진국만 생산하던 아주 비싼 제품이었습니다. 따라서 1가구 1전화를 실현할 정도로 많은 양의 교환기를 도입한다는 것은 국가재정상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전두환 정부에서는 이 전자식 교환기 중 전전자 교환기를 국산화 하므로서 통신혁명을 일으킨 것입니다.
전자식 교환기(전전자 교환기)의 국산화
1) 교환기 국산화의 계기
전두환 정부가 전자식 교환기(전전자 교환기)를 국산화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전두환 대통령의 개인적인 경험과 전두환 정부의 첫번째 경제수석이었던 김재익 수석의 생각이 결합한 산물이었습니다.
때는 박정희 정부 말기, 남덕우 경제부총리는 김재익을 특채하여 경제기획국장 자리에 기용합니다. 이때 김재익은 통신산업에 관한 정책을 수립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위에서 기술했듯 전화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매우 부족했던 상황으로 전화 적체현상이 매우 심각했습니다.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 몰두하다가 답을 찾아냈습니다.
전화교한 방식을 기존의 기계식 교환기를 버리고 전자식으로 서둘러 전환하는 것이었다. 전화 적체 현상을 해소해 나간 선진국 사례가 그랬고, 이론적으로도 그것만이 해답이었기 때문이다.
이장규, 그런선거는 져도 좋다, 106page
그러나 기존에 기계식 교환기를 만들던 회사들의 반대에 부딧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전두환 정부에 들어서 그가 경제수석겸 대통령의 경제선생이 된 후 대통령에게 건의하여 뜻을 이루게 됩니다. 대통령 또한 장군 진급 후 이사한 집에 전화를 신청했는데 회선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한 경험이 있어 김재익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고 합니다.
2) 교환기 국산화에 대한 지원
전두환 정부는 김재익의 말에 따라 공학박사 오명을 채신부 차관으로 보내 통신현대화사업을 총괄하도록 했고 또한 여러 정부산하 연구소를 통폐합하여 한국전자통신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1982년 전두환 정부는 전화교환기 국산화사업을 5차 5개년 계획에 반영시켰습니다. 그 5개년 계획 안에는 전자교환기 사업 외에 컴퓨터 사업, 반도체 사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자교환기 국산화 사업을 위해 총 사업비 800억원이 지원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하고 진행한 끝에 드디어 전자식 전화교환기를 1986년에 개발했습니다. 이로인해 우리나라에 전화 적체 현상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IT산업의 기초는 전두환 정권이다
흔히 IT산업의 기초를 닦은 정권이라고 하면 김대중 정권을 떠올리실 텐데요. 물론 김대중 정부때 IT 분야에 많은 지원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를 키우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IMF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경기부양책의 목적이 더 컷습니다.
그리고 IT산업이라는 것이 어떤 기초가 없이 바로 실현될 수 있을까요? 먼저 전화가 있고 그 다음에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같은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전두환 정부 당시에 우리가 전전기 교환기를 개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던 일이었습니다.
기초를 튼튼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위에 것을 하겠다고 덤비면 금방 무너지듯이 전두환 정부에서 했던 전자교환기 국산화를 통한 통신혁명이 기초가 되어 김대중 정부때 IT산업이 가능했다고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