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4 - 경제분야 2 : 인플레이션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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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4 - 경제분야 2 : 인플레이션을 잡아라!

by 개인주의자 2024. 7. 31.

제가 바로 전 포스팅이었던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3 - 경제분야 1 : 전두환 정부 초기 경제상황에서 박정희 정부 말기에서 전두환 정부 초기까지 인플레이션이 심각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도 남미나 아프리카 국가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인플레이션은 개발도상국에서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그만큼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는게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이 인플레이션을 잡지 않고는 고도화된 선진국형 경제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경제가 매우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경제에서 화폐를 인체의 한 부분으로 비유하자면 피와 같습니다. 따라서 이 화폐의 가치가 보장되어야 경제가 고도화되는데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화폐가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말과 같기때문에 절대로 고도화된 경제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시리즈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1 - 전두환은 5.18과 어떤 관계인가?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2 - 전두환은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을까?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3 - 경제분야 1 : 전두환 정부 초기 경제상황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5 - 경제분야 3 : 금융민영화와 수입자유화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6 - 경제분야 4 : 3저호황과 외채의 악순환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7 - 산업정책 1 : 한국 반도체 산업의 시작과 발전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8 - 산업정책 2 : 통신혁명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9 - 국민 통제 해제 : 야간통행금지 해제, 두발 자유화, 교복 자율화 해외여행 · 해외 유학 자유화 등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10 - 88 서울 올림픽의 의미

전두환 정부는 어떤 정부였을까? 11 - 시리즈를 마치며(왜 전두환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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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을 알아야 잡을 수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그 당시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바로 통화증발이었습니다. 통화증발이란 통화가 증발되어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고 통화의 발행량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시중에 엄청나게 많은 돈이 풀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박정희 정부에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는 통화증발이 되었을까요?

 

박정희 경제에 경고등이 켜진 것은 1970년대 중반 들어서부터였다. 중동 해외 건설 수주가 껑충 뛰면서 달러가 쏟아져 들어왔고, 여기저기서 공장이 지어지고 고층빌딩이 올라갔다. - 중략 -

시중에 뭉칫돈이 풀리면서 고물가에 기름을 끼얹었다. 한 해 물가상승률이 공식 통계로도 40%가 넘나들었다. - 중략 -

다른 한쪽에서는 중화학공업 투자가 물 먹는 하마처럼 뭉칫돈을 수년째 집어삼키고 있었으며, 농민보호를 위한 쌀값 정책 또한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서 감당해가는 형편이었다.

이장규, 그런 선거는 져도 좋다, 25page

 

해설 1) 중동 해외 건설 수주가 인플레이션의 원인?

중동 해외 건설 수주에 따른 달러가 쏟아져 들어온 것이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1차 오일쇼크 때 유가가 급격히 상승하자 중동국가들로 달러가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중동국가들은 달러를 이용해서 자국에 각종 인프라를 지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더운 사막기후에서 일하고자 하는 선진국 기업이 거의 없던 틈을 타서 한국 기업들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로인해 중동 건설 붐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중동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기업들은 공사대금을 달러로 받고 이를 한국은행으로 송금했습니다. 그러면 한국은행은 환율에 따라 원화로 바꿔주었고 그 원화로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주거나 여러 자재를 국내에서 조달하게 됩니다. 달러를 원화로 바꿔주는 단계에서 통화증발이 일어나게 됩니다. 달러가 어느정도 들어오면 기존에 있는 화폐로 바꿔줄 수 있지만 그 정도를 초과하면 돈을 찍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해설 2) 중화학공업에 대한 투자가 원인?

박정희 정부는 처음부터 정부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을 폈습니다. 정부가 계획하고 정부가 자금을 직접 배분하는 형태였던 것입니다. 이 정책은 초창기에는 매우 주요했던 정책이었습니다. 이유는 자금은 부족한데 투자해야 할 곳은 많았기 때문에자금을 낭비해서는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당시 현대, 삼성과 같은 재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사업을 잘하는 사람에게 자금을 밀어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부주도 경제개발 정책은 국가경제가 고도화되고 복잡화되면 필연적으로 그 한계에 부딪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의 한계때문입니다.

 

인간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의 내면도 볼 수 없고 자신의 눈에 보이는 부분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은 알아차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리고 별 노력하지 않아도 어디선가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자금이 있다면 나태해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경제가 복잡해지고 고도화되었는데도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하려든다면 비효율은 이루말할 수 없게 됩니다.

 

당시 중화학공업 부문에서도 이와같은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정부가 지원금을 계속 주니까 나태해지고 경영이 방만해지고 또 정부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인식의 한계로 인해 중복투자가 일어나는 등 비효율이 심각해진 것입니다.

 

해설 3) 각종 보조금이 원인?

보조금을 누구에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시 식량증산을 위해 농업을 중시했기 때문에 농민보호를 위해 쌀값을 보전해 주고 있었습니다. 물론 정상적인 세금으로 했다면 상관없지만 여러이유로 세금이 부족해서 새로 찍어낸 돈으로 보조금을 줬다면 통화증발에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박정희 정부 물가상승률

 

전두환 정부의 인플레이션 잡기

1980년 9월,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물가안정을 첫번째 목표로 삼았다고 합니다. 전두환 정권의 물가안정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당시 물가총괄과장의 회고를 보겠습니다.

 

경제기획원은 1981년 물가 억제 목표를 연초 회의를 거쳐 20%로 잡고 있었다. - 중략 -

그런데 어느 날 김재익 경제수석이 청와대로 회의를 소집했다. - 중략 -

김 수석은 물가 억제 목표를 한자리 숫자로 낮추라는 것이고 우리 일행은 당연히 반발했다. 김재익 수석은 그런 자세로 는 물가를 잡을 수 없다며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 그가 화를 내는 것을 처음 봤다.

이장규, 그런 선거는 져도 좋다, 83page

 

김재익 수석의 말은 전두환 대통령의 의지였다고 합니다.

 

대통령은 계속 몰아붙였다. 이번에는 경제수석을 통해서 물가 억제 목표를 한자리 숫자로 낮출 것을 공식적으로 지시한 것이다.

대통령 전두환은 자나 깨나 물가 안정이었다. 이기에 배치되는 일체의 정책을 배격했다. 장관들에게는 "통화를 증발시키는 정책보고를 하려면 보고서에 당신들의 사표를 첨부하시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장규, 그런 선거는 져도 좋다, 83~84page

 

김재익 수석

 

모두가 고통을 감내해야 성공할 수 있다

전두환 정부의 물가안정 정책은 전 국민의 고통을 수반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정부가 여러 부문에 주고있던 각종 보조금, 투자금 들을 모두 삭감하거나 없애야 했기 때문입니다. 받던 것을 갑자기 끈어버리면 받던 사람은 형편이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그 정책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정책 1) 농업 보조금(추곡 수매 가격 인상률) 억제

잠시 이 정책을 설명하자면 예를들어 산지에서 쌀 20kg이 100원이라고 한다고 했을 때 이 쌀이 소비지에 가서 최종 소비자에게 팔리는 가격은 운송료, 각종 세금 등 부대비용이 포함된 약 150원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쌀값을 낮추기 위해 소비자에게는 80원에 팔고 나머지 70원의 금액을 정부에서 보전해주는 정책입니다.

 

이 보조금의 인상률은 기존에는 매 해 20%~40% 정도 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는 차라리 소비처에서의 쌀값을 현실화 시키고 인상률을 10%로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국회에서 대판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정책 2) 기업의 임금인상 억제

기업의 임금은 생산성의 한 지표라고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따라서 생산성이 오른만큼 임금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 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전두환 정부는 기업에게 임금인상을 하지 말라고 뜻을 전하며 밀어부쳤습니다.

 

정책 3) 대국민 경제교육

실질적으로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국민들에게 대대적인 경제교육을 시킨 것입니다. 1981년 11월 경제기획원 산하에 대국민경제홍보기획단을 신설했습니다. 이곳에서 경제에 대한 각종 책자와 슬라이드 등 각종 교육자료를 만들어 공무원, 대학교수, 각 학교의 선생님들까지 심지어 군대까지 경제교육을 시켰습니다.

 

정책 4) 세출예산 동결

전두환 정부는 1983년 총선을 앞두고 1984년 세출예산 동결이라는 조치를 꺼내들었습니다. 한마디로 정부의 씀씀이를 동결시킨 것입니다. 정부지출은 예외상황이 아닌이상 매년 늘어나게 되어있습니다. 또 각종 인프라와 시설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음해의 세출예산을 동결시킨 것입니다.

 

당연히 여당이었던 민정당은 들고일어나면서 정치적 자살행위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총선을 치르면서 각 지역에 선심성 인프라 사업공약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년 세출을 동결시키면 이런 공약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반대하는 민정당 간부들을 청와대에 불러놓고 전두환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물가를 잡기위해 정부가 앞장서서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데 여당이 반대하면 어떻게 하느냐? 예산 동결 때문에 선거에 진다면 그런 선거는 져도 좋다. - 이장규, 그런 선거는 져도 좋다, 97page

 

전두환 정부의 인플레이션 억제정책의 결과

이 정책의 결과는 그래프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랬으니 참 살기 좋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