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비(명성황후)는 1895년 10월 7일 밤부터 다음날 이른 아침에 걸쳐 일본의 호위대와 낭인들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되었고 이 사건을 가리켜 을미사변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자객을 보내 한 나라의 왕비를 살해한다는 것은 솔직히 정말 야만적인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이런 무식한 을미사변을 일으켰을까요?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민비(명성황후)에 대한 미화부터 걷어내야 합니다. 을미사변을 일으킨 이유를 아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 줄 것입니다.
민비(명성황후)는 매우 미화되었다
과거 명성황후 드라마에서의 이미지
현재 우리에게 각인된 민비(명성황후)의 이미지는 과거 명성황후라는 사극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봅니다. 그 드라마에서는 당시 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와 민비(명성황후) 간에 두뇌싸움이 펼쳐지고 그 싸움에서 이노우에 가오루가 완패합니다. 결국 이노우에 가오루는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도 후임 일본공사에게 자리를 내줬습니다. 이 후임 일본공사가 바로 미우라 고로입니다. 미우라는 무관출신으로 상당히 저돌적이고 무식하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이 미우라 고로가 민비(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킵니다.
일본자객들이 궁궐로 난입해 들어와 왕비가 머무는 건물에 들어와 민비(명성황후)를 찾을 때 궁녀들과 같은 옷을 입고 궁녀들 사이에 있던 민비(명성황후)는 궁녀들이 자객들의 손에 죽는 것을 보다 못해 입고 있던 궁녀 옷을 벗으며 "나다! 내가 바로 조선의 국모다!"라고 외치며 일어나고 이윽고 자객에게 척살당합니다.
아마 이때 이 장면을 본 우리 국민여러분들은 두 손을 불끈 쥐며 정말 많이 우셨을 겁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것은 민비(명성황후)에 대해 엄청나게 미화된 것으로 사실 민비(명성황후)는 자기가 조선의 국모라고 외칠 자격도 없는 여자였습니다.
실제 민비(명성황후)의 정체
1. 민씨척족을 앞세워 나라를 거덜 내다
여기서는 이 사람의 정체에 대해 간략하게 쓰도록 하고 다른 포스팅에서 심층분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민비(명성황후)는 조선을 망하게 한 1등 공신입니다. 민비(명성황후)는 고종과 짜고 자기 집안사람들인 민 씨 척족들이 나라를 해 먹도록 놔두었고 따라서 민 씨 척족과 직접적 관계가 있던 없던 조선은 완전히 썩고 부패하여 가렴주구가 판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민씨척족들이 했던 짓을 더 깊이 알고 싶다면
고종과 민비(명성황후)의 나라 말아 먹기 2 - 가렴주구의 시작(민씨척족의 등장)
고종과 민비(명성황후)의 나라 말아 먹기 3 - 민씨척족의 가렴주구(임오군란)를 참조해 주시고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넘어갑니다.
2. 무속에 빠져 나라를 거덜 내다
민비(명성황후)는 순종이전에 고종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항문이 막혀있는 기형으로 인하여 일찍 죽습니다. 거기다가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 궁궐 근처에서 총과 대포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민비(명성황후)는 무속에 점점 빠지게 되고 여러 가지 굿이나 위령제 같은 것으로 국고를 탕진시킵니다.
외세를 물리치고 더 이상 대포와 총소리가 들리지 않게 해달라고 무당이 말하는 대로 엄청나게 큰 솥뚜껑을 여러 개 제작하여 뒤뜰 화단에 묻기도 하고 당시 못 먹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고 군인월급도 제대로 못주고 있는 상황에서 매일 밥을 몇 가마나 하여 한강에 뿌리는 짓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진령군이라는 무당의 말을 따른 것인데 민비(명성황후)가 얼마나 무속에 빠져 살았는지 여성 무당에게 진령군이라는 시호를 내릴 정도였습니다.
민비(명성황후)가 무속과 미신에 빠져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싶다면
고종과 민비(명성황후)의 나라 말아 먹기 4 - 무속과 미신에 미치다
고종과 민비(명성황후)의 나라 말아 먹기 5 - 총애 받은 무당 진령군을 참조해 주시고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넘어갑니다.
3. 국제정세를 몰라 망국에 빠뜨리다
민비(명성황후)는 고종시대의 이른바 실권자였습니다. 외국사신이 오면 고종 뒤에서 발을 치고 앉아 고종에게 귓속말로 속삭이면서 명령했습니다. 따라서 외국인들 누구나 실권자가 민비(명성황후)라는 것을 알 정도였습니다. 그런 민비(명성황후) 또한 국제정세를 몰라 청나라와 러시아를 끌어들이기 바빴습니다.
왜 일본은 민비(명성황후)를 죽이는 을미사변을 일으켰는가?
이 부분은 일본이 생각하는 한반도의 지정학과 한반도 자체의 지정학과 관계가 깊습니다. 현재 이 포스팅과 함께 다음 두 글을 함께 보시면 더 깊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이 생각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입니다.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글로 넘어갑니다.
1.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착공하다
러시아는 1891년 3월 9일부터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공사를 시작합니다. 이유는 러시아 국토의 동서 간 거리가 9000km가 넘고 모스크바가 있는 유럽 쪽에서 극동까지 바다로 나와 항해하는 거리가 너무 길어 철도를 연결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 이유로 부동항을 찾는 것이 지상과제인 러시아가 착공한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대해 동쪽 끝이 마산 혹은 부산일 것이라고 일본은 예측했습니다. 일본이 생각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이라는 글에서 한반도에 자기들과 적대하는 세력이 들어서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 일본은 이 부분을 가장 우려했습니다.
러시아가 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만들었고 부동항을 찾는 것이 지상과제인지 알고 싶다면
러시아가 생각하는 한반도의 지정학 1
러시아가 생각하는 한반도의 지정학 2를 참조하시고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글로 넘어갑니다.
2. 삼국간섭과 한국에서의 반일감정 고조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본이 청나라로부터 요동반도를 할양받게 되자 러시아는 독일과 프랑스를 끌어들여 일본으로 하여금 요동반도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이와 동시에 한반도에서도 일본을 축출하려고 주한러시아공사를 주축으로 반일감정을 일으키는데 이에 조선 측 주도 인물이 바로 민비(명성황후)였습니다.
즉 정리하자면
첫째로 일본이 생각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에 나온대로 일본은 한반도가 자신과 적대하는 세력에게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던 상황에서 러시아가 극동까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하면서 그 종점이 부산 또는 마산일 것이라는 우려를 하였고
둘째로 러시아는 만주에서 일본을 축출시키기 위해 청일전쟁 승리에 따른 시모노세키 조약에서의 요동반도 할양 약속을 청나라로 하여금 실행하지 못하게 삼국간섭으로 막았고
셋째로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일본을 축출시키기 위해 반일감정을 조장하고 있었는데 그 핵심 동조자가 민비(명성황후) 였다는 것, 따라서 민비(명성황후)를 가만둘경우 결국 일본이 한반도에서 축출되면서 한반도가 일본과 적대하는 러시아에 전부 넘어갈 것이라 우려하여 을미사변을 일으킨 것입니다.
영국과 러시아의 패권전쟁인 그레이트 게임을 알고 싶다면 조선이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유 1을 참조하시고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글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