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과거에 겪었던 수많은 사건 중에 기억이 가장 오래가는 사건은 어떤 것일까요? 아마 공포스러운 기억을 갖는 사건일 것입니다. 이 공포의 기억은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제가 쓴 지정학 시리즈들을 보시면 그 나라가 갖고 있는 지정학적 생각을 형성하는데 그 나라가 경험한 역사적인 공포적 경험이 결대적으로 작용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슨 내재적 접근법이라고 해서 북한이 핵무기(핵 미사일)를 개발하고, 주민들에게 말할 수 없는 잔인한 폭압정치를 하는 등에 대해 그들의 내재적인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미친소리를 하려는게 아니고 제발 북한의 핵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우리 대통령과 김정은이 정답게 마주 앉아 냉면 한 그릇 먹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 입니다.
미국이 생각하는 한반도의 지정학
일본이 생각하는 한반도의 지정학
러시아가 생각하는 한반도의 지정학 1
러시아가 생각하는 한반도의 지정학 2
중국이 생각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을 보시면 그 내용을 더 자세하게 아실 수 있으며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넘어갑니다.
김일성 집권기에 대한 경험 - 북한이 핵무기(핵 미사일)에 집착하는 이유 2
김정일 집권기에 대한 경험 - 북한이 핵무기(핵 미사일)에 집착하는 이유 3
김정은 집권기에 대한 경험 - 북한이 핵무기(핵 미사일)에 집착하는 이유 4 를 참조하시기를 바라며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넘어갑니다.
지도자의 기억이 그 나라의 지정학적 생각을 형성할 수도 있다
그 나라의 건국자나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지도자의 생각이 그 나라의 지정학적 생각을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독재국가의 경우 그 나라의 건국자의 지정학적 생각이 후계자에게 계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먼저 독재국가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건국자였던 이승만대통령이 미국에서 외교독립을 했고 미국의 도움으로 독립을 하고 건국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미국의 주요 인사들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러한 기억으로 인해 한국은 미국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사실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으로서 마음만 먹으면 한국정도야 쉽게 이길 수 있음에도 우리국민들은 미국에 대해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에 있는 주한미군에 대해 호감이 있을 정도입니다.
김일성의 삶과 역사적 경험이 북한정권의 지정학적 생각을 형성하다
독재국가의 경우 그 후임자가 전임자의 모든 것을 승계하여 전임자의 권력기반들을 활용하여 자신이 권력을 공고히 합니다. 특히 중국의 경우 현재도 모든 화폐에 마오쩌둥의 초상이 그려져 있고 중국 공산당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한 비판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권력의 기반이 마오쩌둥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경우도 김정일과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김일성이기에 김일성을 부정할 수 없으며 김일성의 지정학적 생각 또한 그대로 승계됩니다.
김일성 자신의 삶의 경험
김일성은 본명이 김성주로 자신이 만주의 항일 빨치산 운동을 했다고 자랑하며 그것을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삼아왔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매우 과장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김일성이 해방될 때 까지 만주에서 살면서 어떤 것을 경험했을까요?
1. 마적떼 생활
만주에는 마적떼라는 일종의 건달들이 많았습니다. 초기 김일성은 그 마적 떼 중 하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용삼 기자의 김일성 신화의 진실을 보면 당시 마적 떼의 생활은 말 그대로 무법천지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말 그대로 죽고 죽이는 아만상태로 만인이 만인의 적인 상황이었습니다.
2. 중국 공산당 생활
소련이 분열만 거듭하던 조선공산당을 해체하고 조선공산당원들을 중국공산당으로 전부 편입시켰습니다. 그러자 중국공산당에 갑자기 조선인들이 많이 들어왔으며 중국인보다 조선인이 훨씬 많게 되었습니다. 이에 자신의 입지에 위협을 느낀 중국인 공산당 지도자들은 이른바 민생단 사건을 일으켜 조선인 공산당원들을 일본의 밀정이라는 누명을 씌워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일을 진행합니다. 김일성은 이 사건에서 살아남았은데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자세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마 언제 죽을지 모르는 너무나 조마조마한 상황을 겪으면서 수많은 권모술수를 썼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3. 동북항일연군 생활
1921년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이 없어지고 1932년 일본이 만주지역에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워 만주전체를 장악한 후에 중국공산당의 앞잡이 부대인 동북항일연군이 출현합니다. 당시 김일성은 제 1로군 제2군 제6사의 사장으로서 활동하는데 이 동북항일연군은 이렇다 할 전과를 세우지 못하고 일본군에게 하나하나 격파당하면서 해체되기 시작합니다.
이때 김일성도 일본군에 쫒기다 겨우 구사일생으로 1940년 10월 23일 소련국경을 넘어갔습니다. 이는 사실상 불법으로서 우수리스크와 하바롭스크 근처의 야영소에 수용되고 조사를 받습니다. 그러던 1942년 7월 이들을 수용하는 88 여단이 스탈린의 지령으로 창설되고 대위가 되어 8.15 해방 때까지 훈련을 받습니다.
위의 삶을 경험이 김일성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김일성은 거의 무법천지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거친 삶을 살았습니다. 이 경험들이 김일성에게는 아무도 못믿는다 혹은 아무나 믿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의 생각을 갖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항상 죽을까 봐 극도로 조심하고 두려운 삶을 살면서 살기 위해 많은 권모술수를 썼을 것입니다.
김일성의 경험은 북한의 대대적인 숙청으로 나타나다
김일성은 자신을 믿고 따라온 사람들 중에 고향이 남한지역인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또 자신과 함께 북한정권 수립에 참여했던 소련파, 연안파 등을 전부 숙청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북한정권에는 빨치산 운동 때부터 자신에게 충성해 왔던 사람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권력을 침범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데 있다
결국 김일성 자신의 이러한 경험들은 국내에서든 국외에서든 절대 도전할 수 없는 자신의 권력을 만드는데 작용합니다. 김일성에게 핵무기(핵 미사일)는 국외에서 어떤 나라도 자신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북한에 대해 함부로 하지 못하게하는 수단일 것입니다.
김일성의 삶의 경험들과 미국에 대한 경험이 합쳐지다
위의 김일성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더불어 그의 미국에 대한 경험이 합쳐져 핵무기(핵 미사일)에 대한 집착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김일성이 느낀 미국에 대한 경험들에 대해 쓸 예정입니다. 또 북한정권의 속성과도 연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버무려져 핵무기(핵 미사일)를 포기하지 못하는 말 그대로 출구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 아닌지 생각됩니다.
북한정권의 속성에 대해 깊이 알고 싶다면 김대중의 햇볕정책은 왜 실패했는가?를 보시고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넘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