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북한이 핵무기(핵 미사일)에 집착하는 이유 2 - 김일성 시기 북한의 경험
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북한이 핵무기(핵 미사일)에 집착하는 이유 2 - 김일성 시기 북한의 경험

by 개인주의자 2024. 2. 28.

북한이 핵무기(핵 미사일)에 집착하는 복합적인 이유 중에서 김일성 시기에 북한 자체의 경험을 다루고자 합니다. 역시 공포의 기억과 김일성의 개인적 경험에 의한 노이로제, 북한정권의 특성이 복합적으로 연결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슨 내재적 접근법이라고 해서 북한이 핵무기(핵 미사일)를 개발하고, 주민들에게 말할 수 없는 잔인한 폭압정치를 하는 등에 대해 그들의 내재적인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미친소리를 하려는게 아니고 제발 북한의 핵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우리 대통령과 김정은이 정답게 마주 앉아 냉면 한 그릇 먹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 입니다.

 

김일성의 개인적 경험 - 북한이 핵무기(핵 미사일)에 집착하는 이유 1

 

김정일 집권기에 대한 경험 - 북한이 핵무기(핵 미사일)에 집착하는 이유 3

 

김정은 집권기에 대한 경험 -  북한이 핵무기(핵 미사일)에 집착하는 이유 4 를 참조하시기를 바라며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넘어갑니다.

 

 

 

 

정권수립 전 경험

미국의 일본에 대한 핵무기(핵 미사일) 투하

미국은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일본의 가미가제와 가이텐 공격으로 일본본토에 상륙하는데만 100만 명의 미군희생이 예상되자 일본에 인류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을 투하합니다.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며 이때 핵무기(핵 미사일)의 가공할 위력이 드러나게 됩니다.

 

핵무기(핵 미사일)이 투하 된 후 히로시마

 

정권수립 후 경험

한국전쟁의 경험

1. 가공할만한 미군의 화력

김일성은 한국전쟁에서 미국의 가공할만한 화력을 봤습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남한지역에서 북한군이 궤멸된 후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하자마자 김일성은 냅다 만주로 튀었습니다. 바로 이게 RUN인 거죠. 이 사실에 대해 깊이 알고 싶으시면 이승만이 런승만일까? 김일성이 런일성일까?을 참조해주시고 빨간 글씨를 클릭하시면 해당 글로 넘어갑니다.

 

2.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핵무기(핵 미사일)를 사용할 것 같은 제스처

한국전쟁 중 미국의 엄청난 재래식 화력을 본 김일성은 미국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을 갖게 되었으며 동시에 미국의 고위급 장성들과 민간 관료들이 핵무기(핵 미사일) 사용에 대한 성명을 주기적으로 발표하고 동시에 한반도 내 혹은 근처에서 핵무기 탑재 항공기를 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이 실시되는 것을 보고 미국에 대한 또 핵무기(핵 미사일)에 대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또한 미 의회 전문가들은 일본의 경우에서와 같이 핵무기(핵 미사일)를 사용하여 전쟁을 빨리 끝내자고 촉구하는 등 미국내 압박이 점점 커지는 것을 봤습니다. 또한 역사가인 알렉산드르 만수로프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핵무기(핵 미사일) 사용을 고려했다는 사실을 김일성이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으며 언젠가 북한이 미국의 핵무기(핵 미사일) 공격에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트루먼 대통령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정책에 대한 경험

한반도내 미국의 핵무기(핵 미사일) 배치 정책

미국은 1958년 초반부터 한국에 유럽을 겨냥해 만들어진 전술핵 시스템을 배치하기 시작했습니다. 1958년에는 핵 장착 대포, 단거리 핵 장착 미사일 같은 전술핵 시스템을 도입했고 1959년에는 중국과 소련을 겨냥한 장거리 미사일을 추가로 도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를 운용할 미사일 포병부대 배치와 함께 북한이 휴전선 이남에 대한 공격을 재개할 경우 이를 둔화시키기 위해 핵지뢰를 설치했습니다. 이로 인해 김일성의 핵무기(핵 미사일)에 대한 공포는 극에 달했으며 이 경험이 반대로 북한이 핵무기(핵 미사일)를 만들어 한국의 위협하는 재료로 쓰인 것입니다.

 

김일성 시대 북한의 핵무기(핵 미사일)제작의 역사

처음에는 평화적 목적인 원자력 에너지로 시작

한국전쟁이 끝난 후 처음에는 평화적인 원자력에 초점을 맞췄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겉으로는 그것이 팩트일지 몰라도 속내는 핵무기(핵 미사일) 제작이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1960년대부터 실질적인 핵무기(핵 미사일)제작과 배치에 관심

조나단 폴락의 No Exit(출구가 없다)에서는 북한이 핵무기(핵 미사일) 제작과 배치에 대해 처음 논의가 된 것이 1960년 초반 한국에 배치된 미국의 전술핵 시스템의 수와 종류가 크게 늘어나면서부터라고 합니다. 일제시대 김일성의 개인적인 경험과 그 트라우마와 한국전쟁 중 미국에 대해 느꼈던 극도의 공포, 마지막으로 1950년대 말 한국에 미국의 전술핵 시스템이 배치되면서 본격적으로 핵무기(핵 미사일) 제작과 배치에 관심을 보인 것처럼 말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1960년대 지어진 영변 핵시설

 

 

북한도 중국과 소련의 눈치를 봐야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 한국도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특히 우리도 핵무기(핵 미사일) 제작과 배치에 엄청나게 관심이 많지만 그것을 극구 말리는 미국에 의해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북한 또한 자신의 뒤에있는 소련과 중국의 눈치를 봐야 했을 것입니다. 당시 소련은 미국과 양강체제를 구축하여 국제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던 나라로서 북한도 소련의 통제아래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히나 국제정치적으로 위험한 한반도 북쪽을 차지하고 있는 북한이 핵무기(핵 미사일)제작과 배치를 했다고 한다면 매우 큰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한반도의 민감한 지정학에 대해 알고 싶다면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위치와 의미를 참조하시고 빨간 글씨를 클릭하시면 해당 글로 넘어갑니다.

 

북한의 전무한 원자력 기술

우리도 처음에 그랬듯이 북한의 원자력 기술도 완전히 전무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을 유학시켜 기술을 배워오고 기반시설을 만들어야 했기에 소련의 지원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핵무기(핵 미사일) 제작과 배치를 하겠다고 떠들면 과연 소련이 도와줬을까요? 그래서 제가 평화적인 원자력 기술이었다고 하는 것 자체게 위장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북한에 원자력발전소가 없다

만약 처음의 정책이었던 평화적인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위한 것이었다면 북한에는 이렇다 할 원자력발전소가 단 하나도 없을까요? 북한이 핵무기(핵 미사일) 제작과 배치는 부가적인 것이고 실제로 에너지가 목적이었다면 북한은 발전소를 먼저 지었어야 합니다. 따라서 강력하게 이 부분은 위장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