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문화 대혁명을 문화(대) 혁명이라고 쓴 이유는 사실 이게 혁명인지도 모르겠고 혁명이라 해도 영어로 큰, 위대한 이라는 뜻의 great(대)라는 글자가 붙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서입니다. 대약진운동으로 중국의 경제가 후퇴했다면 문화(대) 혁명으로 중국의 역사와 문화는 4000년 이전으로 후퇴했습니다. 실제로 슬픈 중국 2권을 쓴 송재윤 교수의 경우 문화대반란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시리즈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2 - 문화(대)혁명의 시작, 해서파관 사건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3 - 해서파관 사건 이후에서 5-16통지까지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4 - 대중동원과 홍위병의 등장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5 - 홍위병들의 구호, 조반유리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6 - 홍위병들의 활동(폭력 및 살인)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7 - 홍위병들의 활동(문화재 파괴)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8 - 홍위병의 분열과 류사오치의 수난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9 - 홍위병의 종말과 농촌으로 상산하향
마오쩌둥(모택동)의 문화(대)혁명 10 - 마오쩌둥(모택동)의 죽음과 문화(대)혁명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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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을 하기 전 생각이 앞서고 생각은 심리상태에 좌우된다
사람은 어떤 행동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의식하던 안하던 생각이 먼저 앞섭니다. 그 행동을 하려는 생각이 없다면 사람은 그 행동을 절대 실행에 옮기지도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당사자의 심리상태입니다. 따라서 문화(대) 혁명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사건 자체를 나열하기 전에 마오쩌둥(모택동)은 무슨 생각으로 문화(대) 혁명을 일으켰으며 중국 인민들 또한 무슨 생각으로 문화(대) 혁명을 지지하며 맹목적으로 마오쩌둥(모택동)을 따랐던 것인지 그리고 그런 생각을 지배했던 그들의 심리상태는 무엇이었으며 왜 그런 심리상태가 형성되었는지 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이것을 먼저 이해하고 실제로 문화(대) 혁명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보면 그들을 최대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말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독재인가?
제가 마오쩌둥(모택동)의 대약진 운동 비판 5 - 대약진 운동은 왜 실패했는가?에서 썼듯이 마르크스(마르크스)가 자신의 저서에서 항상 말해왔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독재는 실제 불가능합니다. 마르크스(마르크스) 사상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개인이 아니라 어떤 집단 자체에 인격을 부여하여 그 집단이 스스로 무엇을 하는 것처럼 말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어떤 단체도 인격이 없었으며 실제로 무엇을 한 주체는 그 집단을 이루고 있는 개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독재가 불가능 함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변명을 보겠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마르크스, 앵겔스, 레닌을 역사적 합법칙성을 발견하고 공산혁명의 전략을 제시한 과학적 사회주의자들이라며 칭송한다. 과학기술의 복잡한 원리를 몰라도 인민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몰라도 인민은 인간해방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 혜택을 최대화하기 위해서 인민은 무조건 당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무조건적 복종은 혁명적 자기 헌신으로 미화된다. 결국 인민 개개인은 나쁜 머리를 써서 자발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영묘하고 천재적인 혁명적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서 가축처럼 우직하게 일을 하라는 주장이다.
송재윤, 슬픈중국 2권 문화대반란, 68page
그러니까 결국은 마치 대의제처럼 소수의 공산당에게 모든 권력이 귀속되고 그 공산당을 단 한 명의 영도자가 영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독재가 아니라 그 영도자 개인의 독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개인신격화는 완성된다
그렇다면 영도자에 대한 신격화를 위해 무슨작업을 할까요? 여러 억지논리를 끼워 맞춰 인민들을 세뇌합니다.
세뇌의 예 - 1 가스라이팅
마오쩌둥(모택동)이 이끄는 공산당이 1949년 중국대륙을 통일한 것을 가지고 마오쩌둥(모택동)으로 인해 그전에 있어왔던 외세의 침입을 물리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공산당이 신 중국을 만들기 때문에 마오쩌둥(모택동)과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는 것입니다.
세뇌의 예 - 2. 어록출판
여러분은 혹시 마오쩌둥 어록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마오쩌둥 어록을 중국공산당은 1951년 부터 마오쩌둥 사상을 정립하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어록은 마오쩌둥의 연설, 소논문 등을 짜깁기 한 것입니다. 이 책의 편찬자인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린뱌오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수많은 대중이 이해하는 순간, 마오쩌둥 사상은 마르지 않는 힘의 원천이 되고 무한한 권력의 정신적 핵폭탄이 된다.
송재윤, 슬픈중국 2권 문화대반란, 69page
이 마오쩌둥어록은 빨갛고 작은 책이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소홍서 또는 홍보 서라고 불렸고 서양에서는 작고 붉은 책으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성경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1964년부터 중국 전역에서 마오쩌둥(모택동)은 마치 태양신과 같은 위치로 올라섰고 중국인민들은 날마다 마오쩌둥 어록을 읊조렸다고 합니다.
주객이 전도되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기 전 마오쩌둥(모택동)은 이미 대약진 운동의 처절한 실패로 4000만 명의 인민을 아사로 죽인 폭군이었습니다. 주석직에서 물러나있던 마오쩌둥(모택동)은 자신의 후계자로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을 내세웠으나 이들은 마치 전임자 스탈린을 비하했던 흐루쇼프처럼 자신을 비하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류사오치는 대약진운동의 실패의 원인에 대해 자연재해가 30, 인재가 70이라고 떠들었습니다. 또한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은 실용주의 경제정책을 실시하며 농업생산량을 약 4년 만에 대약진 운동 이전 수준으로 돌려놨습니다. 여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마오쩌둥(모택동)은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문화(대) 혁명을 일으킬 준비를 했습니다.
대약진 운동에 대해 깊이 알고 싶다면 마오쩌둥(모택동)의 대약진 운동 비판 1 - 대약진 운동의 시작을 참조하시고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이동합니다.
따라서 이미 깊게 세뇌되어 마오쩌둥(모택동)에 대한 개인숭배를 하고있던 인민대중과 위기의식을 느꼈던 마오쩌둥(모택동)의 심리상태가 만나 이윽고 문화(대) 혁명은 10년 동안 중국대륙 전역에서 발생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