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4 - 서영해와 성시백의 김구 포섭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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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4 - 서영해와 성시백의 김구 포섭 스토리

by 개인주의자 2024. 3. 22.

 

 

이번 포스팅은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시리즈의 마지막 글로써 김구가 어떻게 서영해와 성시백에게 포섭당했는지를 쓰고자 합니다. 저는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김구선생의 최대 공적이 바로 임시정부를 수십 년 동안, 끝까지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지켜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과연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었길래 수십년간 임시정부를 지켜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공간에서 이렇게 포섭당해 이용당하고 말았는지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제가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1 -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요인회담 제안까지에서 분명 서영해의 집요한 설득에 김구선생이 넘어갔다고 말씀드렸고 또 성시백도 공작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럼 서영해는 누구고 성시백은 누구고 또 김구와 이 두 사람이 무슨 관계일까요?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시리즈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1 -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요인회담 제안까지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2 - 회담 참석 및 농락

 

김구는 김일성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했나? 3 - 김구와 김일성의 의도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이동합니다.

 

서영해는 누구이며 김구선생과 무슨 관계인가?

서영해는 과거 상해 임시정부시절 파리 주재원으로서 활동한 적이 있던 인물입니다. 김구의 측근 엄향섭과 가까운 사이였고 그를 통해 경교장에서 김구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서영해의 정체는 자신의 말로써 입증이 됩니다.

 

"나는 현재 북조선에서 모 기관의 요직을 맡고 있다. 김구 주석께서 유엔에 의한 단독선거를 배격하고 북조선의 김일성 위원장에게 남북 총선거를 제의하면 남북을 통한 총선거가 가능합니다. 김일성 위원장은 독립운동 경력이 짧아서 김구 주석을 대통령으로 모시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지요".

- 류석춘, 북로당 간첩 성시백·서영해 공작으로 김구·김규식 남북협상 참여, 자유일보

 

김구에게 통일 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하겠다는 미끼를 던지기로 한 것은 1947년 11월 15일 북로당 지도부와 북한 주둔 소련군 정치장교들이 모인 회합에서 소련군 정치장교들의 제안에 따라 잠정 합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 류석춘, 북로당 간첩 성시백·서영해 공작으로 김구·김규식 남북협상 참여, 자유일보

 

 

북한의 건국과정에서의 소련의 역할을 알고 싶다면 북한, 김일성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을 참조하시고 빨간 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이동합니다.

 

서영해는 자신이 북한정권에 몸담고 있는 북파공작원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영해가 김구선생을 포섭한 것도 성시백의 지시였다는 것이 남로당의 증언에서 나타납니다.

 

서영해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직전인 1948년 7월 남한의 남북협상파들이 결성한 통일독립촉진회의 유엔총회 파견 대표단의 선발대로 파리에 갔다가 북한으로 넘어갔고 그 후 행방불명 됐다고 합니다.

 

서영해

 

 

성시백은 누구이며 김구선생과 어떤 인연이 있었는가?

성시백은 1920년대 국내에서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다가 1920년대 말에 중국으로 갔으며 1930년대에 중국 공산당원이 됩니다. 이때 그의 주된 활동은 국민당 통치 지구에서의 지하공작이었습니다. 중국에서 활동할 때 성시백의 활동지역과 임시정부 활동영역이 동일해서 임시정부 사람들과도 교류했습니다.

 

성시백은 김구의 임시정부를 상대로 통일전선 활동도 했으며 이로 인해 임시정부 요인들과 폭넓은 인맥을 다졌습니다. 이때 김구선생이 중국정부에 요구하는 돈 청탁 문제나 임시정부 사람들의 밥벌이 등 다리역할을 도와주었고 신문에 김구의 선전기사도 써주면서 독립운동 동지로 2중 간첩 역할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상해임시정부의 간판을 달고 프랑스 조계지 안에 있던 김구선생을 비롯한 임정 사람들이 프랑스 총영사의 지시에 따라 조계지 밖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 성시백이 그것을 해결해 준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들로 김구선생은 서영해와 성시백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성시백은 너무나 대단한 간첩이었길래 이 사람에 대해서는 따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서영해의 설득 이후 성시백도 김구를 만나다.

상해 임시정부 때 김구와 성시백의 인연으로 김구는 성시백을 뭔가 출중하고 믿을만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고 성시백의 설득이 아주 잘 먹혀들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성시백 - 제 생각에는 선생님은 우리 민족을 위하여 한생을 바쳐오신 분인데 김일성 장군님을 직접 찾아 뵈옵는 것이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이북에서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민족 자주 역량으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대표자들의 연석회의를 개최할 데 대한 제의를 내놓았는데 이 거사가 성사되기만 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우리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이 아니겠는가? 하는 의견입니다.

김구 - (한숨을 푹 쉬며) 자네 말은 반박할 여지가 하나도 없네. 그렇지만 공산주의자들이라면 무조건 적으로 규정한 이 김구를 반가워할 리가 없지 않은가?

성시백 - 바로 그것이 선생님의 고충이시겠는데 나라가 영영 둘로 갈라지느냐? 아니면 통일이 되느냐? 하는 시국에서 지나간 일을 두고 시비할 것이 있습니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선생님이 결단을 내리시어 북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미국 사람들의 시녀노릇이나 하는 이승만과 손을 잡겠습니까? 아니면 북에 들어가서 김일성 장군과 마주 앉겠습니까?

김구 - 음. 그러니 군은 김일성 장군을 신봉하고 있군, 그래 알겠네. 내 알아서 용단을 내리겠네.

뉴데일리, 간첩 성시백이 김구에게.."장군님도 선생을 대통령으로 모시고자..." 김효선, 1997 5월 26일 북한 노동신문 특집보도

 

성시백

 

 

김구선생의 전향이 너무 빨랐다

김일성은 1948년 1월 초에 김구와의 합작을 강조하며 지령을 내렸고 1월 중순쯤 성시백 등 공작원을 통하여 김구, 김규식을 비롯한 정당 및 단체 대표들에게 남북 연석회의 소집을 제안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

 

1월 28일 두 김 씨가 유엔위원단에 남북요인회담을 제안하였고 2월 26일에는 '남북정치 지도자 간의 정치협상을 통하여 통일정부 수립 방안을 토의하자'는 내용의 공동명의의 편지를 북한의 김일성과 김두봉에게 보냈기 때문이다.

- 뉴데일리, 이승만 건국사(51) 스탈린-김일성-성시백의 화려한 입체공작 성공... 궁지의 김구-김규식 낚이다, 인보길

 

제가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큰 공이 수십 년 동안 임시정부를 공산주의자들의 공산화 작업으로부터 임시정부를 보호한 것입니다. 그런데 김일성이 공작원을 통해 남북연석회의 소집을 제안하는 편지를 보낸 뒤 한 달 조금 넘은 시점에서 그 김구선생이 화답을 보낸 것입니다. 김일성도 이렇게 빠를 줄 몰랐다고 놀랐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김구선생은 자신의 제안에 북한의 답이 없자 마치 안달하듯이 제안을 보낸 지 한 달도 안돼서 또다시 남북정치 지도자 간의 정치협상을 하자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저도 이 부분이 가장 서글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