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 전에 다시한번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글을 보시고 계시는 여러분의 종교가 무엇이든 기독교(개신교)로 인해 생겨난 자본주의의 기원을 알고 싶다면 그 사상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와 자본주의 시리즈
기독교와 자본주의 1 - 인류의 삶의 질이 바뀌다
기독교와 자본주의 2 - 성경으로 돌아가자
기독교와 자본주의 3 - 칼빈이 해석한 성경의 노동관
기독교와 자본주의 5 - 칼빈이 해석한 성경의 재물(연봉, 월급)관
기독교와 자본주의 6 - 칼빈이 해석한 성경의 대부 및 투자관
기독교와 자본주의 7 - 기독교에서 나온 자본주의는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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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사회와 공동체관
칼빈의 직업관은 그가 사회와 공동체를 어떻게 봤는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직업관을 알아보기 전에 먼저 그가 인간의 사회와 공동체에 대해 어떻게 봤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사회와 공동체?
칼빈은 사회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를 두 사람 이상이 모여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초기에 하나님이 아담을 먼저 창조하고 그 다음 하와를 창조했는데 하와를 창조하여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순간부터 그것을 사회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성경에는 가장 기초적인 사회인 가정부터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사회, 예수 부활 후 초대교회사회까지 다양한 사회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 사회들의 공통적인 것은 바로 하나님이 이 사회들을 이루는데 직접 개입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칼빈은 공동체에 대해 무엇이라고 정의내렸을까요? 공동체와 사회의 공통점은 두 사람 이상이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체는 단순한 사회와 달리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의 목표나 이상을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칼빈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는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 즉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기 전의 상태의 공동체라는 점입니다.
그때는 공동체 구성원들끼리 반목이나 갈등이 일어나지 않았고 심지어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 처럼 시기질투에 의한 살인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위의 내용을 탑재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칼빈의 직업관을 살펴봅시다.
칼빈의 직업관
1) 직업은 신의 소명이다
칼빈은 신이 인간으로 하여금 노동을 하게 한다고 성경을 해석했습니다. 이것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는 바로 전 포스팅, 기독교와 자본주의 3 - 칼빈이 해석한 성경의 노동관에서 설명 드렸으니까 궁금하시면 참조하시고 빨간글씨를 클릭하면 해당 글로 이동합니다.
그러나 그 노동은 아무 곳에서 아무렇게나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신이 각자에게 원하는 노동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단지 먹고 살고,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신의 거룩한 뜻을 이뤄가는 일에 각자의 노동으로써 부름을 받고 있는 것이다. - 이오갑, 깔뱅 자본주의의 고삐를 잡다, 237page
따라서 노동이라는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이 자리가 바로 직업이라는 것입니다.
2) 직업에 귀천은 없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직업에는 귀천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때도 사농공상이라고 해서 직업에 귀천을 나눴고 천한 직업은 평민이나 천민이 종사했으며 그 직업과 마찬가지로 종사하는 사람도 사회에서 매우 천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칼빈의 직업관에 의하면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칼빈은 왜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했을까요? 칼빈은 노동을 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인간이 신의 섭리를 함께 이루어 나가는 것이라 봤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때문에 신은 인간에게 그 노동을 잘 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은사를 선물로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사가 다양하기 때문에 그 노동이 행해지는 직업도 다양할 뿐만아니라 귀천이 없다는 것입니다.
칼빈이 자신이 쓴 출애굽기 주석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떤 낮은 직업의 장인들도 그의 신분이 뛰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신의 영이 그 안에서 행하기 때문이다.
이오갑, 깔뱅 자본주의의 고삐를 잡다, 266page
3) 직업을 가진 자가 임해야 하는 자세
노동은 신의 섭리를 함께 이루어 나가는 수단이며 그 노동이 일어나고 있는 자리가 바로 직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특정 직업을 소명으로 받은 우리는 어떤 자세로 노동에 임해야 할까요? 또한 하나님은 무엇을 바라고 그 직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은사를 선물로 줬을까요?
칼빈은 그 물음에 대해 자신이 쓴 누가복음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는 어떤 은사들은 그가 우리에게서 어떤 이익과 이득을 거두기 위한 돈처럼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알자. 우리가 신의 은혜들을 유익하게 사용하지 않고 묻어두고 마는 것보다 더 비상식적인 것도 없다. 본래 신의 은혜들의 능력은 그 열매를 거두는 데서 나타난다.
이오갑, 깔뱅 자본주의의 고삐를 잡다, 267page
위의 인용문을 보고있자면 사복음서에 나와있는 달란트 비유나 므나 비유가 떠오릅니다. 이쯤되면 여러분은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익과 이득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생각나야 합니다. 그 질문에 대해 칼빈의 답을 들어보겠습니다.
신은 우리를 수단으로 해서 부유하게 되거나 더 위대해지지 않지만, 각 사람이 자기 형제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고, 그가 신으로 부터 받은 은사를 그들의 구원을 위해 사용하면 그 사람은 신에게 열매와 이득을 돌려드리는 자라고 말해진다.
이오갑, 깔뱅 자본주의의 고삐를 잡다, 267page
위의 인용문구의 의미를 하나님께서 원한다는 성경적 근거는 십계명에서도 나타나고 십계명에서 파생시켜 이스라엘에게 주신 여러 하위 법들에서도 나타납니다.
직업은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그렇다면 하고많은 직업중에 내가 종사해야할 직업을 어떻게 무슨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요?
-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
직업을 선택했는데 불법이 아니더라도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라면 어떨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겠죠? 그래서 안되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담배를 파는 것은 법적 기준만 맞춘다면 절대로 불법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파는 담배로 타인이 중독에 걸리고 폐암으로 죽기까지 합니다. 이런 직업은 지양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 불법은 절대 안된다
우리나라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주어져 있습니다. 법에도 불법이 아닌 것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즉 성매매의 경우 현재 불법이므로 절대로 직업이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현행법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납니다.
다른 직업선택 사항은 개개인이 신에게 인도 받는 것이므로 제가 기준을 세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위의 두 사항은 꼭 지켜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칼빈의 사상을 따르는 사람이 직업을 갖는다면?
마지막으로 칼빈이 성경을 해석한 사상을 따르는 사람이 직업을 갖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1) 타인을 속이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타인에게 유익을 줘야하기 때문에 절대로 속이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들어 저울을 조작하여 속이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사람들에게 신뢰가 쌓일 것입니다.
2)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유익을 주고 신의 뜻에 더 순종할까? 생각하면서 자신의 직업을 잘 수행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것입니다. 만약 엔지니어라면 그 분야를 더욱 깊게 파고들어 기술을 연마하고 발전시켜 결국 누가봐도 대단한 제품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돈을 벌고 싶지않아도 많이 벌리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바로 축적이라고 부릅니다.
3) 최선을 다한다
이런사람들은 역시 하루하루 업무에 대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이 만들거나 판매하는 제품의 질은 매우 좋아질것이고 소비자들에게 신뢰가 두텁게 쌓여 갈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절대 의도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절대 의도되지 않았습니다. 칼빈도 어떤 종교개혁자들도 의도한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칼빈이 해석한 성경적 원리를 따르다보니 돈을 많이 벌게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재물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겠지만 이들은 돈을 많이 벌었다고 돈을 방탕하게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사람들에게 대규모 자금 즉 자본이 쌓이게 되었고 이 자본을 타인이 유익한 곳에 재투자하게 되면서 자본주의가 꽃 피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