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관계의 역사는 100년이 넘었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정부 간 정식적인 동맹이 되기 전에도 민간차원에서부터 서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이번 포스팅은 한미동맹관계에서 서로가 갈등을 했던 역사를 서술하고자 합니다.
좌파들은 갈등의 역사를 과장하거나 조작하여 반미감정을 유도한다
요즘 심심치 않게 반미감정을 조장하는 댓글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한국과 미국간의 갈등을 과장한다던지 조작하여 반미감정을 유도합니다.
전시작전권 문제
전시작전권(전작권)을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글을 통해 좌파들이 전지작전권을 가지고 어떻게 반미감정을 조장하는지 서술했습니다. 마치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리지웨이 장군이 한국군이 현리전투에서 형편없이 지자 군 통수권을 강제로 빼앗아 간 것처럼 조작을 하고 전지작전권이 마치 우리 군이 미군에 종속된 것처럼 어떠한 자율도 없는 것처럼 속이고 있습니다.
무기제작에 관련한 여러 제한조치
우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도 무기제작에 대한 여러 제한조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제한을 하는 나라는 미국입니다. 과거에 우리의 미사일제작에 대해 제한을 가하다가 문재인정부 말 미국이 일방적으로 미사일 제한을 풀어버렸습니다. 또 핵 미사일, 핵 에너지를 동력으로 하는 잠수함 등 여전히 우리에게 가해진 제한조치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있어왔던 한미동맹의 갈등
동맹이전
공산주의에 대한 처신
해방 후 38도선 이남에는 미군정이 들어섰습니다. 그 당시 미군정을 담당하고 있던 사람은 하지장군으로서 이승만대통령과 엄청난 갈등을 한 사람입니다. 당시 미군정은 이승만에게 공산주의자들와 만나서 좌우합작을 하라고 하지만 그들을 꿰뚫고 있었던 이승만은 공산주의자들을 상대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1946년 전국순회연설 중 정읍에서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천명하고 이에 따라 미군정은 이승만을 가택연금시킵니다.
한국군 무장
이승만은 1948년 건국 후 미국에게 한국군을 무장시켜 달라고 계속 말하지만 미국은 예산조차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군은 6.25전까지 제대로 된 무장도 못하고 침략을 받아 순식간에 부산까지 밀리는 수모를 당합니다.
38도선 돌파
6.25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 후 38도선 이남을 다시 수복하자 미국과 유엔군을 떠나려는 생각을 합니다. 또 그런 기미가 보이자 이승만은 당시 정일권장군에게 명령해 먼저 북진을 하게 합니다. 이로 인해 유엔군은 한국군을 따라 북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휴전협정
중공군 참전으로 1.4후퇴를 하여 결국 다시 38도선 이남으로 후퇴한 후 슬슬 휴전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승만은 휴전을 극구 반대하며 말 그대로 미국의 정책에 방해를 놓기 시작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반공포로 석방입니다. 원래 휴전을 하려면 포로를 맞교환해야 하는데 거제도에 잡혀있던 포로들을 그냥 풀어버린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미국은 이승만을 제거하기 위한 에버래디 계획을 세웠으나 대체인물이 없다는 이유로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승만은 휴전을 하려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참 황당한 조약이었습니다. 국력이 서로 비슷하거나 적어도 어느 정도 되는 것도 아니고 당시 초강대국과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나라가 대등한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승만의 휴전방해를 막고자 조약체결을 약속하게 되며 이승만이 방해하지 않는 조건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합니다.
동맹 이후
경제개발
이승만, 박정희 정부는 해외의 경제학자들이 우리에게 준 경제발전 방안에 대해 절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죽어도 산업화하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이러한 발전모델이 없었고 더군다나 우리는 국토도 작고 자원도 없고 인구도 많지 않았고 심지어 전쟁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된 그들이 보기에 전혀 가망 없는 나라였기에 한국정부가 말하는 산업화는 가망없는 것으로 보고 지원해주지 않았습니다.
안보갈등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패전한 이후 닉슨대통령이 아시아 국가들의 안보는 자신들이 책임지라는 말을 하게 되고 미군에게 전적으로 의존해 왔던 우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더군다나 미군을 갑자기 철수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박정희는 닉슨을 여러 차례 만나 앞에서는 주한미군 철수를 하지 않겠다는 말을 받았지만 뒤에서는 계속 철수하겠다는 것을 정책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갈 테면 가라. 그러면 우리는 핵무장한다.라고 항의했습니다.
박정희 정부 말기에 당선된 지미카터는 미국 대통령 중에 이토록 공산주의자들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로 매우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말끝마다 주한미군 철수를 외쳐댔고 북한과 중국의 독재와 인권침해는 무시하면서 박정희의 독재에 대해서는 날을 세웠던 이상한 인간이었습니다.
무기제작 제한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미국은 우리에게 유난히 군사분야에서는 너무나 박하게 대했습니다. 한국군의 무장과 현대화에 대해서도 잘해주지 않았고 우리가 만드는 미사일과 핵과 관련된 무기에 대해서 지금도 제한을 가하고 있습니다. 미사일에 대한 제한이 풀린 뒤 우리는 SLBM, 현무시리즈를 순식간에 개발, 대량생산하고 있으며 여전히 핵 잠수함, 핵 미사일 등은 제한받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미국과 한국 간의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무조건 미국이 강대국이라 우리의 주권을 침해한다고 봐야 할까요? 제가 이 부분은 다음 포스팅을 쓰겠지만 조선시대까지 우리가 종주국이라고 섬겨왔던 중국과 미국은 근본부터 다른 나라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왜 미국이 우리에게 이런 제한을 가하는지 그들의 심리와 또 우리 과 그들의 입장 차이에 대해 쓰고자 합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 간에도 서로 갈등이 있기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