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소개
기독교강요라는 책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면 아마 알기 어려운 책일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강요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기독교의 교리가 채계적으로 쓰여있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존 칼빈(프랑스 발음 - 장 깔뱅)으로서 1500년대 살던 프랑스 사람으로 종교개혁자 중 한 명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의 여러 종교개혁자들과 이후 각 시대마다 거인들이 출현했지만 종교개혁으로 출현한 기독교의 교리를 형성하는데 가장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기독교강요는 1541년 초판이 출판된 이후 지속적인 개정을 거쳐 1559년 최종판이 출판됩니다. 개정을 하면서 그 분량이 지속적으로 늘어 최종판의 경우 출판사마다 세 권에서 네 권까지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이 책은 매우 훌륭한 책입니다만 읽기가 쉽지 않은 게 1500년대 유럽에서 서술하는 글의 방식으로 되어있어 현대와는 조금 괴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자라면 인내를 갖고 한번 독파할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칼빈의 신학을 따르는 교파가 장로교이며 이 장로교는 독일, 네덜란드, 영국 등 여러 국가에서 융성하다가 청교도로 대표되는 장로교도들이 영국왕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이민하여 미국까지 장로교가 뿌리내립니다. 이후 구한말 미국인 선교사들이 한반도로 와서 선교하는 바람에 한국에도 장로교가 뿌리내리게 됩니다. 그 근간이 되는 가장 중요한 책이 바로 기독교강요입니다.
기독교강요 내용
이곳에 방대한 기독교 강요 내용을 전부 서술할 수는 없지만 칼빈과 기독교강요에 대한 오해를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합니다. 일부 이단의 음해나 혹은 정통교단의 기독교 신자라도 칼빈이 성령을 배제했다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강요를 한 번만 보신다면 그 오해는 없어집니다. 칼빈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나 하나님의 뜻에 맞게 죄를 이기고 사는 것 그 외에도 신자로서 하는 모든 것들은 성령을 의지해야 하고 도움을 받아야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우리가 성경을 볼 때 그 성경의 말씀의 내용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또 진정으로 그 내용을 믿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고 필수적이라고 말을 합니다. 성경의 내용을 믿는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본이므로 바꿔 말하면 성령의 도움이 없다면 신앙자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하나의 오해가 바로 예정론입니다. 이 교리는 칼빈이 만든 것이 아니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을 정리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먼저 논리적 타당성을 보자면 하나님의 속성 중 전지(全知)라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 전지라는 것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다 안다라는 뜻으로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그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지에 대해 이미 하나님은 영원전부터 알고 계셨으며 그 사람이 언제 태어나 언제 죽을지 다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르면 전지가 아닙니다. 그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이미 계획 속에 창세전 이미 선택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성경적으로 보자면 대표적으로 야곱의 경우를 보면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야곱을 창세전 이미 택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독교강요 총평
이 책은 두껍습니다. 현재 기독교강요 초판과 최종판이 번역되어 나와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최종판은 초판이 출판된 이래로 계속해서 개정된 탓에 그 분량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따라서 현재 번역되어 나오는 책을 보면 세 권 내지 네 권으로 나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초판은 어떨까요? 대개 단권으로 나옵니다만 그 단권짜리 책도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라면 한번 독파해 볼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이단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정통신학을 일단 안 좋게 생각합니다. 물론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다른 신학자들보다 칼빈을 그렇게 싫어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아마 칼빈이 기독교의 교리체계를 잡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것과 칼빈신학을 따르는 장로교가 이단정죄를 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무조건 칼빈을 배척하고 심지어 지옥에 갔다는 헛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칼빈에 대해 너무나 오해하고 있으며 기독교강요 근처에도 안 가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또 그것은 오해다 한번 보라고 권해줘도 배척하고 볼 생각을 안 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들은 것은 있어가지고 헛소리들을 합니다. 그래서 느끼는 것이 아무리 번역이 깔끔하게 잘 돼서 나와도 아무나 볼 수 없는 책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솔직히 쉬운 책은 아니지만 고전인 만큼 볼 가치가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