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com, pub-5408680833476551, DIRECT, f08c47fec0942fa0 조선왕조 쇠망사 5-3 - 중화사대의 역사 : 소중화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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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쇠망사 5-3 - 중화사대의 역사 : 소중화 사상

by 개인주의자 2024. 11. 17.

조선왕조의 중화사대의 끝판왕이 바로 소중화 사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왜 소중화 사상이 생겼고 소중화 사상이 무엇인지 또 소중화 사상의 결과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문명국이 오랑캐에게 당했다

조선은 개국당시부터 주자성리학에 의해 중화사대주의를 마음속으로 체화시킨 나라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학사상을 따르는 정도에 따라 문명국과 야만을 구분해 왔습니다. 따라서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과 바다건너에 있는 일본을 야만이라고 생각하고 업신여겨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풍조는 조선시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추후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명나라 이외에 조선 주변에 있는 다른 민족과 나라들을 '야만'으로 여겨왔던 조선이 일본에 침략을 당해서 나라가 망할뻔했고 7년간의 전쟁으로 전 국토는 황폐화되었습니다. 이렇게 당한 것도 모자라서 여진족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조선에게 조선이 명나라에게 해왔던 것과 같은 군신관계를 요구해 왔습니다. 조선의 지배층들은 이를 매우 모욕적인 것으로 여겼습니다. 소중화 사상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일종의 '정신승리' 였던 것입니다.

 

소중화 사상이란 무엇인가?

중화의 근원이었던 명나라가 청나라에 의해 멸망하자 조선의 지배층은 중화의 문명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이어지지 않고 조선으로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청나라를 세운 여진족이 오랑캐였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소중화 사상의 정의를 살펴보면

 

소중화(小中華)는 정통 한족 국가인 명나라가 망한 이후 주변국들에서 중화의 계승은 오랑캐가 세운 청나라가 아니라 자신들이 그 정통성을 이어받았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 나무위키, 소중화

 

조선의 지배층은 소중화 사상을 내세워 현실에 대한 정신승리를 하게 됩니다. 그 정신승리의 내용이 무엇이었을까요?

 

비록 무력을 앞세운 청에게 정복당했지만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는 명의 문명을 이어받은 조선이 우월하다고 자부하면서 청을 '상국'으로 섬기면서도 내심 '북인', '오랑캐'로 경멸한다.

함재봉, 한국사람만들기 1권 174page

 

소중화 사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1) '도통과 왕통'의 논리를 내세우다

소중화 사상은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중화의 명맥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가지 않고 조선으로 왔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명나라와 청나라는 지배층만 한족에서 만주족으로 바뀌었을 뿐 모든 것은 명나라와 같았습니다. 따라서 혈통으로 보면 중화의 명맥은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반면 조선은 명나라와는 다른 민족이고 다른나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청나라로 가지 않고 조선으로 왔다는 것을 합리화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밀은 바로 '도통과 왕통'의 논리였습니다. 우암 송시열은 공자 때의 유학부터 주자성리학까지 면면히 흐르는 논리인 '도통과 왕통'의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그렇다면 '도통과 왕통'의 논리가 무엇일까요?

 

대저 상고의 성신께서 하늘을 이어 극을 세우신 이래로 도통의 전승이 스스로 유래가 있게 되었다. 그 경전에 보이는 것으로 이야기 할 것 같으면 "진실로 그중을 잡아라!"는 요임금께서 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에 해주신 말씀이다. 그리고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게 생각하고 한결같이 행동하여, 진실로 그중을 잡을지어다"는 또한 순임금께서 우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에 해주신 말씀이다.

함재봉, 한국사람 만들기 1권, 281page

 

위 인용문을 보면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줬다고 하고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줬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요임금과 순임금은 혈연지간도 같은 왕실출신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또 순임금과 우임금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요임금에서 순임금으로 그리고 우임금으로 왕위가 계승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왕위를 받을만한 성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혈연같은 관계와 상관없이 인품만을 보고 왕위를 물려주는 것을 '도통'이라고 하고 반대로 혈연관계로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바로 '왕통'인 것입니다.

 

따라서 명나라와 조선은 다른민족이고 다른 나라지만 유교사상을 가장 잘 체화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중화의 명맥이 도통의 원리 이어졌다고 생각했던 것이 바로 소중화사상의 근원이었습니다.

 

2) 조선의 굴욕을 송나라와 굴욕과 동일시 했다

제가 얼마 전에 쓴 조선왕조 쇠망사 4 - 주자성리학에서 주자성리학이 송나라의 비참한 현실을 뒤로하고 정신승리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렇다면 송나라의 비참한 현실이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서는 간단히 서술하고 더 깊게 알고 싶은 분은 조선왕조 쇠망사 4 - 주자성리학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송나라는 조광윤이라는 사람이 960년에 세운 나라였습니다. 조광윤이 무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반란으로 송나라를 세운 터라 자신도 반란으로 쫓겨날 것이 두려웠는지 문치를 강조하며 군사력을 약화시켰습니다. 그렇다 보니 문제는 주변 이민족들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송나라의 경우 북송(960년 ~ 1127년)과 남송(1127년 ~ 1276년)으로 나뉘는데 북송의 경우 북쪽에 있던 요나라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많은 조공까지 바쳤습니다. 이때 만주에서 여진족이 강해지자 한 가지 꾀를 내는데 바로 이이제의 전략이었습니다.

 

여진족의 나라였던 금나라에게 함께 힘을 합쳐 요나라를 치자고 제안했습니다. 송나라는 요나라도 물리칠 겸 요나라와 금나라를 싸우게 해서 금나라의 힘을 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금나라의 침공을 받은 요나라는 생각보다 빨리 멸망했고 서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러자 금나라는 다시 송나라를 공격해서 송나라의 북쪽지방(화북)을 빼앗았습니다. 그러자 송나라는 양자강 이남으로 이동해 가는데 이때부터 남송이라고 합니다. 남송 또한 군사력이 약해 주변나라에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1276년 몽골족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주희(주자)는 남송 때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송나라의 치욕에 대해 정신승리 하기 위해 주자성리학을 만들었고 송시열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치욕을 송나라의 치욕에 대입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주자성리학을 더욱 고수했습니다.

 

송시열은 조선이 청에게 당한 굴욕을 송나라가 금에 당한 굴욕에 비교하였다. 여진이 세운 금나라에 북송이 무너진 후에도 남송이 중화문명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주자와 성리학의 등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여진이 세운 청과 싸우기 위해서는 조선 역시 주자성리학으로 철저하게 무장하는 길 밖에 없다 곡 생각했다.

함재봉, 한국사람 만들기 1권, 252page

 

 

완전한 쇄국의 길로 나아가다

이때부터 조선은 주자성리학이 아닌 다른 유학의 일파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들을 철저히 배척하며 '주자성리학 근본주의'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혹자는 이 사람들을 '주자성리학 탈레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조선은 청나라의 문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희 쇄국을 했고 청나라에 대한 감정을 여러 가지로 표출했습니다.

 

주자성리학은 문명의 완성을 기한 철학체계이며 명나라는 주자성리학을 완벽하게 구현한 왕조로 정의한다. 주자에 대한 일체의 비판은 금지된다. 근본주의적인 주자성리학 질서 수립에 박차를 가한다.

대외적으로 청의 문물이 조선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정치적, 사상적 쇄국정책을 시행한다. 청나라가 강의제에서 건륭제에 이르기까지 소위 '강건의 치'를 이루면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융성기를 맞지만 조선은 이를 모두 오랑캐의 것으로 배척한다.

조선 후기의 숭명반청 이념은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된다. 명대에 조공을 바치러 가는 사절단은 '조천', 즉 조정에 알현하러 간다고 하였으나 청대에 들어서는 단순히 '연행사' 즉 연경에 가는 사절단이라고 이름하여 격하시켰다. 청의 사신들을 '호차, 즉 오랑캐의 칙사'라고 불렀고 숙종은 청의 강희제를 '북인'이라고 불렀다

함재봉, 한국사람 만들기 1권, 285page

 

이렇게 이들은 청나라에 대한 모든 것  배척을 하면서 위와 같이 생각하며 스스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중국에서는 청이 모든 중국인에게 여진족의 복식은 물론 변발마저 강요하자 조선은 자신들만의 명의 복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명으로부터 도입한 주자성리학에 입각한 예법과 제도, 복식은 모두 중국에서는 사라진 문명의 가장 구체적인 증거로서 조선이 마지막 문명국의 자존심을 걸고 지켜내야 하는 것들이었다.

함재봉, 한국사람 만들기 1권, 285page

 

이런 사람들이 서양문물을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안 봐도 비디오' 아닐까요?

 

송시열